Friday, October 4, 2013

한 날 묵상 - 막 6:30-34절 <사역과 쉼 그리고 쉼가운데에서 목자없는 양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날 묵상 - 막 6:30-34절  <사역과 쉼 그리고 쉼가운데에서 목자없는 양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역자의 마음, 쉼과 사역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하나 더 아무리 사역을 위한 쉼이라 할지라도 쉬면서 간직해야 할 중요한 마음은 믿음없고, 믿음 약한 자를 바라보는 연민의 마음이다. 나를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이것이다.

1. 사랑의 수고을 다한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달콤한 열매맺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잠못이루고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거나, 열심히 일해서 목표한 것들이나, 수고의 땀흘림속에 수확의 기쁨은 달콤하기 짝이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열 두제자를 파송하였고, 그에 따른 보고를 받게 됩니다.
 30절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이"

3. 이 보고를 받는 예수님의 마음은 흐믓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기특하게 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의 말은 제자들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수고했으니 좀 쉬어라'
 31절 "이르시되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쉼을 주십니다. 수고와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쉼입니다. 쉼은 필요합니다. 탈진은 아주 잘못된 자기 관리입니다. 몸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추가) 일상으로부터 탈출. 육체적 쉼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너무 지쳐있다. 상당히 분주하다.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쉴수 없는 지경이다. 나도 좀 쉬고 싶다. 현재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나 뿐 아니라 아내도 이러한 쉼이 필요하다.^^

6. 그런데 쉼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가서 잠깐 쉬어라".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천국입니다. 이 땅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렇기에 계속 쉴 수 없습니다.

7. 믿음에 사람에게는 믿음의 사역과 섬김에 은퇴는 없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은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문제가 일어날 때 많은 부분은 은퇴하신 분들로 인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은퇴 목사님, 은퇴 장로님, 은퇴 권사님.

8.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잠깐 쉬어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 회복을 위한 잠깐의 안식과 쉼은 필요하지만 그 나라 갈 때까지 은퇴는 결코 필요치 않습니다.

9. 내 마지막 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10. 쉼이 길어지면 안됩니다. 쉼은 다음 사역을 위한 쉼입니다. 쉼이 길어지면 다음 사역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깐 쉼은 좋지만, 그 이상의 쉼은 안됩니다.

11. 예수님께서 쉼을 허락하시면서 현재의 자리를 떠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31절 "오가 가는 삶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12. 그래서 제자들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잠시라도 쉬고 다음 사역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3. 다음 사역을 위해 잠시의 쉼을 가지십시요. 그래서 다음 사역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역은 기쁨과 행복과 감사함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 쉼이 필요합니다.

14. 그런데 그 잠깐의 쉼의 시간에도 우리가 늘 붙잡고 있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은 정확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5. 33-34절입니다.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서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시시더라"

16. 바로 연민의 마음입니다.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입니다. 쉼가운데에서 그들을 향한 이 마음을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17. 잠시 쉬는 동안에도 목자에게서 양은 전부입니다. 양을 향한 근심과 걱정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 없는 양은 이리에 노출될 뿐 아니라,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무리에서 떠나 혼자 길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18. 그들을 향한 이 마음은 늘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쉼 이후의 사역을 쉼가운데 더 집중하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필요가 아니더라도 이 마음을 품고 안식하는 것은 쉼 이후의 사역에 더 간절함을 가지고 안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19. 그리고 목자 없는 양들을 살피는 최적의 방법은 "가르침"입니다. 
34절 "불쌍히 여기서" 그들을 향해 하신 일은 다름 아닌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이빈다.

20. 가르침을 보다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목자없는 양같은 우리게 가장 긴박하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1.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입니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2.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쉼은 예수님의 멍에를 멜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목자없는 양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멍에를 멜 때 진정한 쉼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23. 여기에서도 그런데 중요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게 배우라"

24.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께 멍에를 넘기고 쉽고 가벼운 예수님의 멍에를 맬 수 있습니다. 

25. 목자 없는 양들에게 진정한 쉼을 주기 위해서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배우고 익혀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드리고 쉽고 가벼운 주님의 짐을 그들이 멜 수 있습니다.

26. 목자 없는 양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빵이 전부일까요? 밥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침이 전부입니다.
 이 말씀은 이어지는 막6장 35-44절의 비교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7. 짧게 요약하면, "가르침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빵이었습니다." 왜 먼저 가르침이었나? 지금 그들은 빵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습니다. 혹여나 빵이 먼저 필요하였다면, 당연히 율법보다 그들의 생명이 우선임을 마가복음 앞장에서 우리는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추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낭독하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가난한 자, 병든 자, 억눌린 자들의 해방을 예고하는 메시어 사역의 메시지가 그 자리에서 선포되었다(예수, 한국 사회에 답하다. P378)

28. 진정한 쉼은 예수님의 멍에를 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만 누릴 수 있습니다.

29. 우리 안에 복음이 들어가야 길 잃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세상의 수고와 어려움에 짓눌지 않고 그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30. 제자들의 수고와 헌신에 예수님은 잠깐의 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31. 그러나 그 한적한 곳의 쉼에서는 늘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들을 향한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쉼이시기 때문입니다.

32. 오늘 우리도 제자도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너무 지쳐 힘들어 다음 사역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적당히 쉼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잠깐의 쉼 동안에도 결코 잊지 맙시다. 내가 누구이며, 나는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존재하며, 복음을 간직하지 못한 자들을 향한 연민과 긴박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3.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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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절 -사역과 쉼

32절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쉬지 못하고 사역이 계속되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무리들이 따르다
33절


사역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 -
34절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34절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평화의 장소  - 분주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연과 소통하라.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소로는
분주함을 극복할 방안으로 평화의 장소를 마련했다.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집 안에서 구역을
나누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어떤
집에서든 그와 같은 장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
그런 공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디지털 세상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


- 윌리엄 파워스의 《속도에서 깊이로
》중에서 

1.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와 있다. 

2. 창밖을 보니 평화롭기 그지 없다. 

3. 잠시 세상의 분주함과 단절하고 자연과 교통하고 쉽다.

4.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같이 간다면 더욱 좋겠다. 

5. 겨울에 세상은 푸르름과 앙상한 가지가 공존한다.

6. 자연은 시간에 맞추어 제 갈길을 가고 있다. 

7. 때가 되면 다시금 창밖에는 활기찬 푸르름이 피어오르겠지.

8. 나도 내 영혼 한편에는 푸르름과 한 편에는 앙상한 가지뿐일지라도 때가 되면 생명의 씨앗이 내 영혼과 함께 나의 온몸 곳곳에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9. 마음의 여유를 간절히 찾고 싶다. 

10. 답답함? 불안? 초초? 쫓김? 두려움? 압박?

11. 나의 상태를 지금 돌아보니 이러한 것들로 가득하다.

12. 잠시 내려놓고 지금 여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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